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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케이티 페리의 Passion Story - Katy Perry is all in 201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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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문화, 각양각색의 여자들, 그리고 유머가 저에게 영감을 줘요.”                                              &



“팝 문화, 각양각색의 여자들, 그리고 유머가 저에게 영감을 줘요.”
                                                                         - Katy Perry is all 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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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 (Katy Perry)

출생 : 1984년 10월 25일, 미국
신장 : 173Cm
직업 : 가수
가족 : 러셀 브랜드(배우자)
데뷔 : 2001년 1집 앨범 [Katy Hudson]
취미 : 롤러스케이팅, 미니어처 골프, 아이스 스케이팅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흐뭇한 여성분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시나요? 남성잡지 맥심에서 2010년에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을 선정했습니다. 1위가 누구였냐고요? 그녀는 바로 케이티 페리였습니다. 마돈나가 매체에서 ‘주목하고 있는 신인’이라고 언급했던 가수이기도 하죠. ‘I Kissed a girl’로 빌보드 차드 7주 연속 1위의 기록을 세웠고, 세 번째 싱글 ‘Firework’앨범에서만 4개의 1위곡을 내기도 했답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녀의 화려한 삶의 이면에는 어마어마한 끈기와 열정이 감춰져 있었다는 사실, 모르셨죠? 지금부터 여러분을 케이티 페리의 열정 속으로 초대하겠습니다.






열정을 배우다.

케이티 페리 같은 여인은 어디에서 태어났을까요? 캘리포니아 주의 산타 바바라라고 하는군요. 부천에서 케이티 페리 같은 가수가 나온다면, ‘부천에서 케이티 페리 나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대대적으로 붙었겠죠? 케이티 페리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셨다고 하네요. 답답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케이티 페리에게는 신앙적인 환경이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가스펠이라 불리는 기독교적인 음악을 쉽게 접했고 레크리에이션 춤을 익히기도 했거든요. 어려서부터 춤에도 관심이 많았는지, 노련한 댄서들에게 스윙, 린디-합, 지터벅 등을 배우기도 했다네요.

페리는 도스 푸에블로 고등학교에서 1학년을 마친 후,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키려 했답니다. 멀쩡히 학교를 다니다가, 음악 전문학교로 전학을 가려했던 거죠. 결국, 페리는 산타 바바라 서부 음악 아카데미에 등록해서 이탈리아어 오페라 공부를 시작했다네요. 갑자기 오페라라니, 그것도 이탈리아어! 어쨌든 음악에 대한 열정만은 대단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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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역경을 극복하는 키워드.

여러분은 15세 때 무얼 하셨나요? 보통은 학교와 집을 오가며 좀비처럼 살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지만 케이티 페리는 15세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답니다. 테네시 주 내슈빌의 한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을 때 전문가의 눈에 띄었거든요. 길거리 캐스팅과 비슷한 거죠.^^ 그 전문가로부터 기타와 작곡 등의 기술을 배우고 데모 테이프 녹음도 시작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처자가 아닐 수 없네요. 게다가 15세에 앨범을 냈다는 거죠. 가스펠-록 장르의 음반인 <Katy Hudson>! 첫 앨범을 낸 기분이 어떨까요? 반응이 어떨까, 앨범이 잘 나왔을까, 걱정이 돼서 잠도 못 잤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앨범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답니다. 물론, 실패는 케이티 페리의 열정을 꺾지 못했지만요.

이후 케이티는 케이티 허드슨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케이티 페리라는 예명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페리’는 케이티 어머니의 과거 이름이라고 하네요. 이후로도 케이티 페리는 끊임없이 음악을 하고자 노력했답니다. 물론, 현실은 결코 녹녹치 않았죠. 우리로 따지면 대입을 앞둔 고3 정도의 나이에 집을 나가서 로스엔젤레스로 향했고, 그곳에서 아일랜드 레코드와 새로운 계약을 채결할 수 있었답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죠?^^ 케이티 페리도 그 고생을 피할 수가 없었어요. 2005년에 앨범을 발매하기로 했는데, 이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거든요. 음악으로 먹고 살기 힘든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은가 봅니다. 그런 상황에도 우리의 페리는 열정적으로 음악을 추구했습니다! 자신의 공식 마이스페이스 페이지에 “Box”, “Diamonds”, “Long Shot”등의 글을 올렸는데, 그중 하나였던 “Simple”이 영화 《청바지 돌려입기》의 사운드트랙으로 채택되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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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 성공가도를 달리다.

케이티 페리는 콜롬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고, 새로운 프로젝트 음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지지리 복도 없다는 말을 이럴 때 써야할 까요? 페리의 음반이 80%가 진행된 상황에서 계약이 만료되어버린 겁니다. 흑흑.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는 법! 페리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P.O.D의 싱글 <Goodbye for Now>가 인기를 끌면서, 페리도 덩달아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답니다. 휴우~, 천만다행입니다.
 
한국에서 가수들이 음반을 내면 뭘 하나요? TV나 라디오 등 각종 매체의 여러 프로그램에 마구 나와서 얼굴을 내밀죠! 케이티 페리도 비슷했나 보네요. TV프로그램 카메오로 출연을 시도하면서 끊임없이 대중에게 얼굴을 보이려 애썼거든요. 그 결과, 페리는 2007년에 캐피탈 레코드와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제발, 이번만큼은 성공하길!

2007년 11월.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네요. 케이티 페리의 싱글 <Ur So Gay>가 발매되었거든요. 이 무렵, 팝의 여왕 마돈나가 케이티 페리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신인”이라고 말해주어서, 케이티는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08년 5월 6일, 드디어 싱글 앨범인 <I Kissed a Girl>이 발매되었습니다. 한 번 즈음 들어보셨죠? 못 들어보셨다고요? 들어보면 ‘아~, 이 노래?’하실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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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Kissed a Girl>은 빌보드 핫 100에서 무려 7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답니다. 난리가 난 것은 미국만이 아니었죠.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영국 등 30여개 국가에서 정상을 휩쓸었거든요. 그 결과, <I Kissed a Girl>는 미국에서만 400만 사본을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흑흑! 케이티 페리의 누적된 열정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케이티 만세!

<One of the Boys>. 케이티 페리의 팬이라면 아시겠죠? 그녀의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한 정규 앨범이랍니다. 이 앨범이 나오자마자 빌보드 200에서 9위로 데뷔했고, 전 세계적으로 7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답니다. 김건모 씨가 <잘못된 만남>으로 250만 장을 판 것이 국내 최고 기록인데, 700만장이라니! 역시, 큰돈을 벌려면 세계로 나가야 하나 봅니다.

케이티 페리는 단박에 세계적인 가수로 껑충 뛰어올랐답니다. 이제는 성공할 일만 남은 거죠. 세 번째 싱글인 <HOT N COLD>는 빌보드 핫 100에서 3위까지 올랐답니다. 곡을 발표하는 족족 대박행진을 이어간 거죠. 게다가 독일, 캐나다, 덴마크 등지에서 정상을 차지했답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퀴즈를 하나 내볼까요? 두 번째 정규앨범인 <Teenage Dream>은 발매 첫 주 동안 몇 장이나 팔렸을까요?
무려 192,000장이랍니다. 2010년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슈퍼주니어 앨범이 230,000장이라고 하는데, 고작 일주일 만에 19만 장을 팔아치운 거죠. 그래서 슈퍼주니어도 세계 방방곡곡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봐요!^^

<Teenage Dream>은 데뷔하자마자 빌보드 200에서 1위를 거머쥐었어요. 빌보드 차트에서도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 일이었죠.

<California Gurls>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이 노래도 <I Kissed a Girl>처럼 듣고나면 ‘아~, 이 노래?’하실 거랍니다.^^ <California Gurls>는 빌보드 핫 100에서 6주 연속 1위를 지키는 것도 모자라, 미국 방송에서 총 11,816회가 방송되었다고 하네요. 빌보드 사상 가장 많이 방송된 노래로 17년 만에 기록을 남겼다고 하네요. 그런 기억 있으시죠? 어느 동네를 가든 임재범의 고해만 주야장천 흘러나오던 기억. 하하. 드넓은 미국 땅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었나 봅니다.^^ 그런데 케이티 페리가 아주 큰 사고를 냈답니다. <Teenage Dream> 앨범에 들어있던 4개의 곡이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한 거죠. 한 앨범에 들어있는 노래 4곡이 연달아 1위를 차지하다니! 이 정도 되면, 국민가수라는 말을 붙여줘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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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셔니스타, 케이티 페리.

케이티 페리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패션에 관심이 많은 여성분이나, 모든! 남성분들은 육감적인 몸매와 화사한 드레스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네요.^^ 케이티 페리의 독특한 패션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을 받는데요, 그녀의 패션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조금씩 다른 것들을 같이’라고 하네요. 평소 페리는 드래스를 즐겨 입는데, 그녀의 드레스들은 미래적이며 유머러스하다는 평을 받는다고 합니다. 미래적이며 유머러스하다니, 그게 대체 뭔 소리야? 하시는 분들은 위아래의 사진을 봐주세요.^^ 정말 그렇죠? 다른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케이티 페리가 남성잡지 맥심에서 녚년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1위’로 선정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케이티 페리 만세!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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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가 말하는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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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아직도 화려함과 섹시함, 성공한 가수라는 단어들이 생각나시나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여성으로 손꼽히는 케이티 페리이지만, 그녀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는지. 이 글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첫 앨범이 실패로 돌아가고, 레코드사와 계약을 해가며 세월을 보내지만 노래는 한 곡도 내지 못하는 박한 운명! 훌륭한 가수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만들어지는 것인가 봅니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케이티 페리는 단 한 번도 삶에서 음악을 떨어뜨린 적이 없었답니다. 어려서부터 음악과 춤에 대한 열정을 꾸준히 유지해왔고, 음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도전했지요.

“팝 문화, 각양각색의 여자들, 그리고 유머가 저에게 영감을 줘요.”

어느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웃음으로 미래를 꿈꾸는 것이야말로 케이티 페리가 가진 열정의 근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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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5:09 2011/04/1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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